[매일경제] 오늘부터 1日입니다.
- 박물관
- 조회수1139
- 2019-06-12
[매일경제] 오늘부터 1日입니다.
2019.06.12.
임지영 나라갤러리 대표/ <봄말고 그림>저자
http://uberin.co.kr/view.php?year=2019&no=409212
얼마전 펴낸 책에 호기롭게 이리 썼다.
ㅡ안목이란 무엇일까. 좋고 나쁜것을 고르는 분별이 아니라 좋은데 더 좋은 것을 골라내는 취향일 뿐이다.ㅡ
예술에 대한 아주 사적인 관점이지만 그 안목이란 것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자주 접하고 자꾸 가까이 가면 못보던 것을 보고 안보이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발견은 재미를 가져온다. 재미는 몰입을 가져오고 취향을 확장시킨다. 나의 이 내멋대로 예술 사용법은 퍽 요긴해서 예술 앞에 쫄지 않는 강심장을 만들었다. 물론 난해한 현대 미술 앞에서 곁눈질로 제목을 보거나 ㅡ아뿔싸, <무제>라니!ㅡ 박물관의 어둑시근함을 지레 답답해하며 피하기도 했다.
박물관이 어둡고 지루하고 권위적일 것이라는 건 선입견이다. 특히 국립 중앙 박물관의 최근 기획전들은 몹시 흥미롭고 흥행 대박이다. 나는 박물관을 사랑하게 됐다. 박물관 뿐이랴. 볼거리가 있는 모든 전시장을 사랑했다. 하지만 사설 박물관들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하다. 얼마간의 국가 지원이 있으나 거의 개인의 열정과 몰입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교 박물관들도 겨우 유지는 하되 새로운 기획전이나 유물전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그런 와중에 정말 특별한 전시를 만났다. 성균관 대학교 박물관의 검여 유희강 선생 기증 특별전 <劍舞 BLACK WAVE 검무>전.
나는 내가 이토록 먹글씨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 먹그림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자라온 환경이 온통 먹통이어서(웃음) 아직도 오래된 종이 냄새라거나 묵향을 기억하고 있다. 유물 수집광 아빠 덕분에 포도무늬가 양각된 벼루라거나 거북이 청자 연적, 족제비 털 붓을 갖고 놀았던 기억도 선명하다. 나는 청전 이상범의 여백 많은 잿빛 추경 아래서 가을을 났고, 소정 변관식의 거칠게 눈발 날리는 설경 아래서 겨울을 보냈다. 그래도 그림은 내용을 다 볼 수 있으니 나았다. 먹글씨는 당최 무슨 뜻인지를 모르니 아무리 빼어나고 빼곡하게 써내려간 글자도 말그대로 어느 광인의 괴발개발이나 다름 없었다. 그 때 아빠가 얘기해주셨다. 글씨로 보지 말고 그림으로 보라고. 가만히 써내려간 그 마음을 들여다 보라고. 한획 한획 공들인 그 마음이 어땠을까 고요히 짐작해 보는 것만으로 마음은 진짜 금세 온화해졌다. 세월이 위로해오는 순간이었다. 예술이 이어주는 시간이었다.
검여 유희강 선생의 글씨가 낯이 익었다.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명필이라는 평가답게 작품들이 너무도 근사하여 가슴이 뛰고 연신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웠다. 힘이 느껴지는 필체는 추사를 떠올리게 했으나 <완당정게>나 <무량청정>은 독특한 그만의 예술혼이 웅혼했다. <완당정게>는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준 시를 마치 불탑의 형태로 형상화한 글씨인데, 그 의미 또한 기막혔다. 잠시 발췌하자면,
완당정게 (阮堂靜偈)
儞心靜時 네 마음이 고요할 땐
雖闤亦山 저자거리도 산이지만,
儞心鬧時 네 마음이 흐트러질 땐
雖山亦闤 산이어도 저자거리 되네.
只於心上 오직 마음 안에서
闤山自分 저자와 산이 나뉜다네.
儞處闤闠 네가 장터에 있으면서
作山中觀 여기가 산 속이라 생각하면
靑松在左 푸른 솔이 왼편에 있고
白雲起前 흰구름이 앞에서 일어나리
머릿속에 맑고 찬 것이 훅 들어오는 돈오의 시간. 잠시 그 순간에 멈춰섰다. 요즘 말로 띵언이었다. 물론 잠깐 무릎 탁탁 치다가 다시 108 번잡의 시간으로 뛰어들어가 허겁지겁 살지라도, 혹여 글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른다 할지라도, 글씨는 이미 그 자체로 근사한 예술 작품이었다. 심지어 복도에 34미터나 되는 <관서악부>는 왼손으로 쓴 글씨다. 친구의 장례식장에 다녀와 쓰러져 오른쪽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그는 다시 왼손으로 붓을 잡았다. 한글자 한글자에 기가 충만했다. 결기가 가득했다. 그에게 쓰는 일은 곧 살아있음 이었으리.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얼른 전화를 했다. 맘이 급해 대뜸 물었다.
ㅡ엄마, 우리 집에 검여 유희강 글씨 있었지?
ㅡ그럼. 아빠가 얼마나 아끼던 글씨인데. 보고 또 보고 감탄했지. 검여 그 분이 막 나서고 그런 분도 아니어서 인품도 존경했고.
어쩐지 낯이 익었더랬다. 동글동글 예서체가 친숙하였다. 글자 병풍으로 만들어져 응접실에 오래 쳐져 있었는데도 검여 선생님을 몰라봤다. 안목이란 게 이렇게도 까막눈 되기 쉽다. 자주 보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자꾸 다가가지 않으면 멀어져버린다. 안목은 사랑함과도 같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아니하다 했다.
나는 오늘 몸을 한껏 기울여 그를 보았다. 귀를 한껏 기울여 그를 들었다. 몹시 아름답고 엽렵한 큐레이터님이 너무나 열성적으로 중매를 해주셨다. 왜 이제서야 이토록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까. 아빠도, 글씨도 다 사라진 지금에서야.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그래도 몇십년만에 눈부신 재회라니! 다시 만난 검여 유희강 선생님. 우리 오늘부터 1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