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닫기
통합검색
 
  • home
  • 대표컬렉션
  • 일제강점기유리원판사진

대표컬렉션

일제강점기유리원판사진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앞에서 촬영. 맨 우측이 후지타 료사쿠.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앞에서 촬영. 맨 우측이 후지타 료사쿠.

소장 경위와 자료의 의의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필름 1,876매(유리원판필름 1,609매, 셀룰로이드필름 267매)를 소장하고 있다. 이는 일본인 식민사학자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1892~1960)가 조선총독부 박물관 관장으로 있었던 192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까지 촬영한 것으로, 대상 지역은 한반도 전역은 물론 만주 지역에까지 이른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조선고적조사 등 공적 사업의 일환인 것이 전체의 70%인 1,300매 내외이며 나머지는 후지타가 수집한 개인자료로 추정된다.

 

후지타는 식민지 조선의 문화재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었으며, 그러한 특권을 이용해 이와 같은 자료들을 소장할 수 있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그는 자신의 방대한 자료를 일본으로 반출하지 못한 채 떠나게 되었는데, 성균관대학교가 1953년 경 후지타의 유리원판필름을 입수하였다. 본래는 본교 사학과에서 이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지만 유리원판필름의 파손을 방지하고 영구보존 및 적절한 활용방안을 도모하기 위해 1968년 본교 박물관으로 이관되었고, 이듬해인 1969년 유물로 등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박물관으로 이관된 이후에도 유리원판필름의 내용 파악 및 인화의 어려움, 자료의 부족 등으로 말미암아 이 자료의 본격적인 복원 및 활용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2004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개관 40주년을 맞아 비로소 유리원판의 복원·정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개관 40주년을 기해 역사적 의미와 희소성이 있는 소장자료 가운데 미답의 영역이었던 유리원판의 활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유리원판필름의 디지털자료화와 내용 정리를 대체로 완료할 수 있었다.

 

후지타는 역사 서술을 문화사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식민사관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유리원판필름은 일본 제국주의의 부산물로, 식민사관의 구축을 목표로 생산된 것이다. 그러나 이 유리원판필름은 1920~40년대 우리 문화재의 존재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소실·훼손된 많은 문화유산들의 보존과 복원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또한 일제에 의해 생산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식민지 고적조사 및 식민사관의 실상과 의도를 폭로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본교 박물관은 이 유리원판필름을 활용하여 2006년 집안 고구려 유적, 2007년 경주 신라 유적의 유리원판전을 개최한 데 이어 2012년 유리원판 복원완료 특별전을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소장 유리원판의 대표적인 내용들에 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1938년 장군총 모습

1938년 장군총 모습

만주 지역

후지타 료사쿠의 유리원판 중 만주 지역의 것은 488매인데, 그 중 옛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집안(集安) 지역의 것이 225매이고 그 외 길림(吉林), 화전(樺甸), 용정(龍井), 연길(延吉) 등의 발굴조사 사진이 263매이다. 후지타는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무용총과 각저총을 비롯해 집안 7대묘로 불리는 태왕릉, 장군총, 임강묘, 북대석릉, 남대석릉, 천추총, 서대총 등 집안 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세밀하게 조사했다. 이 때 조사된 집안 지역 고구려 유적의 외관 및 내부의 고분벽화 등을 담은 유리원판은 2006년 본교 박물관의 《集安 高句麗 유적의 어제와 오늘》 展에서 일부 공개되었다.

 

또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서는 연길 지역의 ‘소영자(小營子) 유적’과 관련된 유리원판도 존재한다. 소영자 유적은 초기 청동기시대 유적으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분묘가 집단적으로 매장되었던 곳으로, 후지타가 1938년 3월 발굴을 위촉받은 뒤 수차례 방문하면서 관심을 기울였던 곳이기도 하다.

 

1913년 12월 중순 경주 석굴암

1913년 12월 중순 경주 석굴암

경상도-경주 지역

후지타 료사쿠가 촬영한 남한지역의 사진 가운데 경상도는 50% 이상인 567매이며, 그 중 경주가 372매로 가장 많다. 이 자료들은 그가 1925년 경주 불국사와 남산을 조사한 것을 시작으로 1926년 황남동 소형고분군, 1929년 서봉총, 1934년 남산 식혜골 신성비, 1936년 석굴암 등을 발굴 및 조사하면서 촬영한 것이다. 특히 일제에 의해 구조적 원형을 잃고 손상되었던 석굴암과, 역시 일제가 ‘수리공사’를 진행한 불국사의 모습도 유리원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교 박물관은 2007년 《慶州 新羅 유적의 어제와 오늘》 展에서 경주 지역 유리원판필름을 공개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편 경주 지역 외에도 경남에서 부산 동래 범어사 비봉, 창녕 진흥왕순수비, 하동 쌍계사, 합천 해인사 등의 조사, 그리고 경북에서 구룡포 고인돌, 문경 봉암사 등과 울릉도까지 방문 등이 자료로 남아 있다.

 

1934년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1934년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석불 오른편 바위 위에 올라 촬영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의 남한 지역

경주-경상도 지역을 제외하고 후지타가 촬영한 남한 지역의 사진은 501매이다. 그 중 서울이 121매, 경기도 22매, 강원도 20매, 충청도 151매, 전라도 187매로, 수도를 제외하면 주로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지역의 사진들은 총독부청사 주변의 모습이나 훼손된 궁궐 및 궁문들을 담고 있어, 조선의 쇠락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일제의 의도가 강하게 배어 있다. 또한 조선 역사에서 치욕의 상징인 삼전도비와 세검정 등을 집중적으로 촬영한 자료들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전라도에서는 해남 대흥사, 김제 금산사, 익산 미륵사지, 구례 연곡사·화엄사, 순천 송광사, 남원 실상사, 순천 선암사 등의 사진이 있다. 충청도 지역은 부여 정림사·대조사·부여박물관, 청양 장곡사, 천안 천흥사 등을 조사하고 촬영한 것이 있으며, 부여와 중화 등지의 고인돌 사진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