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영화를 보면 웬 슈퍼맨, 슈퍼우먼이 왜 그렇게 많은지.. 어렸을 때 6백만불의 사나이, 원더 우먼, 소머즈등이 기억나지만 지금은 영웅들이 끝도 없이 많다. 뮤턴트라는 명목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인공들이 나오고 급기야 져스티스 리그라는 이름으로 모든 영웅들을 망라해 영화가 나온다. 내 짧은 기억으로는 이들을 다 기억하지도 못한다. 전에 학회발표할 때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을 비교하는 질문들이 많아 슈퍼맨과 배트맨의 차이를 보여주며 장총과 기관총을 갖고 있는 터미네이터의 사진을 보여주고 두 가지 기능이 다르다고 설명했었다.
사람들은 왜 그 많은 영웅들이 필요할까? 어쩌면 소시민들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영웅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이 내재하고 있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욕망이 표현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슈퍼맨이 아닌 이상 인간에게 열등감은 인간의 본질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는 정도의 개인 차이가 있지만 열등감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열등감은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격지심이다. 사람들을 상처받게 만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격지심을 외면하려 애쓴다.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 한다. 그러나 자격지심은 우리를 움츠리게 만든다.
왜 그럴까?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학원 때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한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무지한 진실을 늘 대면하면서 좌절한다. 내가 무지하다는 것.. 그 무지를 아는 순간 그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싸운다. 이것이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싫어 감추고 싶을 때가 있다. 자존심 상한다고나 할까. 자격지심인 것이다. 단순한 자격지심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그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갑자기 아는 체하려고 하고 허세를 부린다. 그 순간 사람관계도 금이 갈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과학의 본질에서 피하게 되니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가끔 자격지심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헷갈린다. 자격지심의 대척점은 자긍심이다. 여전히 헷갈린다. 열등감의 대척점은 우월성이다. 우월성에 대척점과 비교되는 것은 자긍심이다. 우월성은 거만함(arrogance)과 비슷하고 다른 사람들의 심사를 거스른다. 자긍심은 자부심이고 다른 사람들을 헤치지 않고 스스로 존중한다. self-esteem 이다. 열등감은 자기가 부족하다는 자체이고 이것은 거의 fact에 속한다. 즉 슈퍼맨은 내가 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가진 자이다. 자격지심은 내가 부족하다기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열등감과 그 차이가 크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정작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 자격지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체하지 말고 외면하지 않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째 자격지심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처음 연구를 시작하는 학생들이나 박사를 한 연구자들도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학회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문하기를 어려워한다.
왜 그럴까? 뭐가 두려울까?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표자는 대개 새로운 연구를 발표하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따라서 질문해도 당연히 창피할 것이 없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내가 모르면 질문해도 모든 사람들이 설명해준다. 모르고 아는 체하는 것보다 질문해서 알아냈으면 그만 아닌가. 최악은 모른 채로 그냥 놔두는 것이다. 그럼 평생 모르니까. 그러니 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내가 스스로 진실해지니까. 불편한 진실이 없어지니 자긍심도 높아질 것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