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제 인터뷰 하면서 절망이 스멀스멀해지는 하루였다. 토요일 아침을 늦잠자고 쌀쌀한 서재에 돌아서니 -아직도 춥다 봄이 느끼기에는- 작년 아프고 일기를 썼던 기억을 더듬었다.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철자 엉터리, 어설픈 말들... 절망들, 희망들 모두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벌써 석달이 지났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여전히 어설프고 말이 새어나오고 논리도 어리숙하다. 머리는 여전히 비어짐이 느껴진다. 어제 인터뷰를 보면서 또 한번 절망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도대체가 그 30초 동안 말이 뒤죽박죽이고 수도 없이 말이 세어난다. 논리라는 것이 없다. 결국 말을 직접 글로 쓰고 그 글을 보고 읽어도 여전히 발음이 안된다. 전에도 물론 우리 말이 어려운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얼마나 반복했을까. 지금 순간 지난 3개월에 비해 얼마나 개선했을까. 후 여전히 느껴진다. 먼것처럼... 하기야 매일처럼 그렇게 느끼는데 내가 무엇을 기대한 걸까. 인터뷰 한다고 무엇을 기대했을까. 부짓없는 것을.
센첸에 학회를 결국 가기로 결정했다. 이미 결정된 플레너리강연 시간이라 또 다른 사람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또 무모한 것일까. 4월 중순에 그 시간이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까. 또 절망감이 밀려온다. 왜 이리 무모한걸까. 그냥 못한다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또 책임감이 결국 무모함일까. 그러난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무모한 호기심이 또 도전을 부른 것이리라. 그게 나일까.
그 3개월동안 절망과 희망이라는 다리교차로에서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희망이라는 생기는 순간 얼마지 않아 또 절망이라는 나래로 금방 떨어진다. 얼마나 반복해야할까. 매일 매일 논문이라는 것과 싸우면서 절망한다. 희미한 뇌의 기억을 도무지 명쾌한 언덕 너머로 널어갈 것 않지 않다. 암흑의 터널 속에서 얼마나 지나가야 할까. 과연 햇살이라는 희망이 그 너머에 있는 것일까. 아직도 어려운 말이다. 힘들다. 순간순간 말하기 힘듦이 느껴진다.
오늘도 이 교차로에 나는 정처 없이 헤매인다. 갈곳이 없다. 고독한걸까 외로운걸까. 아니 난 이 말조차 희미하다. 정처없다는 말, 그 어느때 뇌였던 영어 대사처럼 'I am a lost sheep' 나는 그저 잃어버린 어린 양처럼...
-------------------------------------- 엉터리 작년 수정후---
눈 앞이 캄캄했다. 할 수 있는 것이 마무 것도 없었다. 20 살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은 할수 없다는 것. 내가 결핵이라는 벽 앞에서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내 가슴은 하얗게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다. 그 날 바로 병가를 얻어 그날로 방안에 쳐박혀 앉아 그냥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없어졌다. 참혹한 현실.. 그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연의 그늘 뿐... 그랬었었다. 40년전 내가.
12월 3일 새벽.
또 하나의 시련이었다. 정신이 없어 미로를 헤메고 별수 없이 병원을 간지가 10일이 지나고 13일이다. 눈이 침침해 희미해 글을 읽을 수가 없다. 퇴원한지 월요일 온 후 이틀이다. 문득 현실이 떠오른다.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왼쪽 눈은 희미하여 말이 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자판기를 뭐라고 이해하기 힘들다. 그저 감사하다는 것. 다행히 발, 손이 멀쩡하고 감사하다는 것 이외는... 오늘 처음에야 글을 보았다. 문장이라는 것이 잘 안된다는 것.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 내가 제대로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몇 번을 몇 번씩 반복해야 겨우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겨우 안다. 스무살 전 또 악몽을 경험하고 있다. 또 다시..
내 진단은 뇌경색. 우측 뇌가 괴사했다. 그래서 왼쪽 눈이 침침하다. 시력이 아주 약해 말하자면 어질어질하다. 우측 뇌가 부어올라 두통이 심하다. 우측 눈이 아프다. 또 하나는 실어증이다. 문장 말이 느리고 말이 헛소리가 나온다. 말이 어저정쩡하다. 조금만 말이 길어도 혼돈 스러워진다. 간단한 격언도 말하기가 힘들다. 무기도문 몇 문장을 수없이 반복해도 발음도, 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언제 무기도문을 언제 암기할지 나도 가늠할 수가 없다.
현실은 가혹하다. 스무살의 악몽이던 그 날들이 악몽처럼 새겨진다. 과연 2개월이면 말이나 쓸 수 있을까. 내가 눈을 볼수 나 있을까. 이렇게 겨우 글짜 하나씩 맞추어 새겨나는 이것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과연 연구를 할 수 있기라도 한 것일까. 내가 산다는 것이 의미나 있는 것일까. 2월 5-7일에 발표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 평가위원회가 과연 가능한 걸까?
그래 조바심을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 어눌해도 시간이 지나면 나이지는 것 아닌가. 논리가 맞추어지는 것 아닌가.
차라리 꿈을 꾸면 좋겠다. 매일 밤바다 꿈을 꾼다. 나는 끊없이 논문을 토의한다. 난 출근을 한다. 꿈속에서도 계속 토의를 한다. 나는 신나 있다. 내가 그렇게 연구라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그렇게 잠을 깨면 가혹하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달싹도 할 수 없다. 난 왜소해버린다. 아무것도 할 수 밖에 없는 나의 현주소. 어눌한 내말... 두 개의 문장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무기력함.. 흐릿한 눈 모는 것들...
melancholy..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
기억의 희미한 것 하나
겨우 각인 하는 나의 몸부림...
겨우 나당키나 한 것일까.
17. 12. 14 (목요일)
물러 갈 곳이 없다.
그냥 가야하는 것이 숙명이다.
어리저리 불러보아도 그냥 가야한다.
그전 어린 시절 그때처럼 내 메아리가 없었다.
그래 오기심 밖에 없다. 그냥 누구 이야기하는지 보자. 누구 나를 불러보지 않아도 내가 가야한다. 나 밖에는 없다. 하나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그의 의로움을 의지하고 내가 주님에 의탁 하자.
훌겨워 버리자. 편해지니 가볍다. 내 마음이 불편하면 어떨까. 그래 말이 서툴러도 그게 나인데 무슨 대수일까.
아침 왼쪽을 보니 시야가 멀어진다.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두 눈이 아직도 불편하지만 아직도 왼쪽이 약식인 탓이리라. 약하기는 하지만 왼쪽 눈이 또 또렷하게 보인다. 그것도 감사할 일이고 놀랍다.
어젯 저녁 TV를 청취하면서 처음 logic이 들렸다. 사실 발음을 청취해도 발음이 연속으로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력이 한 단어 이 이상을 기억할 수 없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집중하고자 했는데 뉴스가 처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한 단어가 아니고 몇 개의 오랫동안 이억이 새겨졌다. 논리가 보여진다. 희망이 보인다. 논리라는 것이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JTBC의 긴 논리 추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발음이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길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단한 변화다. 뒤죽박죽인 독해가 가능하다. 처음으로...
아침 책상에 앉아 이메일을 집중하면서 이제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처음으로... 이메일을 눈이 침침하긴 하지만 이해 할 수 있다. 모든 이메일을 이해하고 하나씩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신기하다. 침침한 것 이외에는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정말로.. 하나님께 놀라운 역사다. 그의 뜻이 누구일까. 나의 뜻은 무슨의미일까. 정말 나에게 정말 가당키나 한 일일까. 하나님에게 누구 존재일까. 나는 아직도 말이 헛나오지만 느껴진다. 나의 내 평생 나는 누구일까 의문해 왔지만 나란 어떤 사람일까. 하나님이 그분이 나를 세워 주실 길이 있을까. 알 수 없다. 참으로 알 수 없다. 모새의 기적처럼 그런 나를 예비하신 걸까. 그래 알 수 없지만 그래 나가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 하나님이 예비하심이신지 그래 가봐야만 한다. 그래 멍청한 우리 중생이 어찌 하루를 알 수 있을까. 도마처럼.. 그저 느껴봐야 알 수 있는 것을...
17.12.15(금)
어김없이 꿈이 연이어온다. MIT에, 어떤 곳을 끈임없이 나온다. 알수 없는 심연이다. 김필립도 있고 소강표도 있다. 강철이 좋은 말인지 알수 없었다. 알기 기해하기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무슨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아침보니 아마도 as strong as metal and as light as metal 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악몽이다. 말이 뉘죽박죽이다. 말이 혼동스럽다. 어제 뉴스를 보는 것도 실망스럽다. 겨우 맥락이 보이기는 하지만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대체 말을 하기 힘들다. 눈이 어질어질하다. 왼쪽 눈의 초점이 많이 흩어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 피곤해진다. 우측 좌측 두 개가 많이 차이난다. 너무 왼쪽이 나쁘니 교정기가 필요한걸까. 우측 뇌경색이 죽어있고 좌측 식약이 강화시키는 것이 좋은 걸까. 혼돈스럽다.
많은 생각을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것이 아무것이 없으니 그냥 생각하지 말자. 우울도 사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몇가지. 복식호흡하기, LED 뇌운동 훈련, 몇가지 작은 몇평 운동하기, 체조운동하기, 글씨 읽기, 영어 기억하기, 뉴스 logic 집중하기, 그게 전부다. 가곡을 따라가기도 목이 쉬었다. 체력도 바닥이다. 오후면 침울해진다.
처음으로 사우나를 갔다. 나늑한 따뜻한 느낌이 묻어난다. 아직 이해하기 표현할 수 없지만 그냥 아늑한 느낌이 좋다. 건식사우나도 복식호흡이 버틸만하다. 우측 뇌부분이 멍한 느낌이다. 고장 나있음이 느껴진다. 얼마나 정말 없어져려 버린걸까. 발음을 찾아내기 힘들지만 그 것이 무엇인지 기억난다. 그리고 또 까먹는다. 반복하면 다시 기억하는걸까. 뇌란 신기하다. 분명이 일부를 기억한다. 잊어버렸을 뿐.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다시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죽어나지 않았다.
기이하다. 분명 뇌경색이 있다. 그런데 나의 무슨 무의식은 자리잡고 있다. 분명 우측쪽이 죽어갔지만 나는 거의 대부분 그대로 있다. 나의 의식의 대부분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모든 것들, 희미하지만 logic이 존재한다. 얼마나 logic이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나다. 기억의 어렴풋이 나질 않지만 그래도 문명 내가 존재한다. 분명 희망이 있다. 그 기억을 찾아내야한다. 그래야 논리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사우나 후 pt 선생에게 들렀다. 나를 몇 명이 반겨준다. 모두 놀랐을 것이다. 새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이다. 감사할 일이다. 내가 숨쉬고 있다는 것...
17.12.16(토)
눈이 흐릿하여 어지럽다. 오늘 더 심하다. 아침 사우나를 갔었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성경을 읽고 나니 눈이 더욱 어지럽다. 글씨가 비틀어진다. 심하다. 좋아지겠지...
성경을 읽기가 쉽지 않다. 확실히 말이 헛나온다. 좋아지는 것 같지 않다. 인내하자. 이것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감기운이 있다. 추운 탓일까. 내 내성도 약해졌다보다. 입술이 부르텄다. 피곤한 탓일까. 내가 전처럼 좋다고 생각하지말자. 감기 걸릴수도 있다. 이제부터 한걸음씩 하나씩 걸어가야 한다. 평가위원회를 2월로 개최하는 것을 못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이라면 내가 말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겸허히 받아들이자. 복잡할 수 있다. 그것이 한계인 것을...
점심때 모두 초밥을 먹었다. 밥을 전처럼 그리 맛있지 않다. 몸무게도 이제 91kg 이다. 이대로라면 90 킬로 시간문제다. 괜찮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인내하자. 즐겁게 하자. 내가 할 수가 없잖아.
17.12.17 (일)
새벽에 목 아프기가 계속되더니 아침에 일어나보니 목이 가뜩 감겨있다. 기침도 반복한다. 아예 말이 나오지 않아 화경이가 편의점에 약을 가져와 먹고 잠을 잤다. 이불을 껴입고 잤더니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전히 목이 아프다. 아마도 내일에는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면역력이 감소한 탓일까. 또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인내의 시간도 필요한 것이 있는 것이다.
엄마가 아침에 일어 서시더니 갑자기 요통이 심해지셨다. 화경이가 이것저것 해 보더니 조금 움직이신다. 그래도 아픔을 참고 식사하셨다. 타이레놀을 먹고 조금 회복하셨다. 갑자기 추워서 그런지 근육이 경련인 탓일까. 다행이다.
내가 뇌경색이 생겨 엄마도 놀라셨다. 하기야 모두 가족이 큰일인 것을.. 아마도 마누라가 제일 놀라고 겁이 많은 탓에 얼마나 놀랐을까. 아들 딸이 얼마나 놀랐을까. 나의 똥고집으로 911 바로 갔더라면 아마도 뇌경색을 회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버티고 눌러 있었으니 어련할까. 내 탓이다. 누구 탓할 것이 못된다. 모두 내 탓인 것이다. 그래도 감사하다. 아직 이것만이라도 성한 탓이다. 개의치 말자. 그래도 또 노력할 수 있지 않은가. 느리면 어떠랴. 어눌하면 어떠랴. 어눌하면 어눌하는데로. 느리면 천천히 가자. 어차피 난 그렇게 거북이처럼 느린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그저 감사하고 갈 일이다. 그런 나에게도 분명 하나님 쓰시고자 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비록 돌품없는 바위일지라도 언젠가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우울한 탓일까. 그러나 머피의 법칙처럼 몰아서는 안된다. 언젠가 전환점이 필요하다. 이것조차 모두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 발음이 뒤떨어진다고 게의치 말자. 어차피 조금씩 나아지게 되어있다. 이미 끝바닥이다. 어차피 올라가게 되어있다. 게의치말자. 이미 시간은 나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