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代 문장가 '소동파' 진적(眞籍) 5일간 최초공개(2020.9.18. ~ 2020.9.24. <공휴일 휴무>)
-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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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7
宋代 문장가 '소동파' 진적(眞籍) 5일간 최초공개
성대박물관 동파의 〈백수산불적사유기〉 국내유입경로 밝혀내
9월18일 저녁6시, 포털다음의 카카오갤러리 온라인전시 동시오픈
성균관대학교박물관(관장 조환)은 9월18일부터 제39회기획전 《파두완벽(坡肚阮癖)》에서 송대 문장가 ‘소동파’의 진적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1095)를 단 5일간(9.18∼24, 공휴일 휴관) 최초 공개한다고 밝혔다. 언택트 시대에 발맞춰 전시는 9월 18일 저녁6시, 포털다음의 카카오갤러리 온라인전시 동시오픈 되며, 일반관람은 예약제로 실시된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7∼1101)가 백수산(白水山)을 유람하고 쓴 시,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는 지난 천년의 역사 속에서 많은 문인들에게 회자되어온 유명한 시(詩)다. 소동파의 진적으로 확인된 '목석도(木石圖)'가 최근 크리스티 미술품 옥션서 사상 최고가 670억원에 팔린 것만 보아도, 소동파를 향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소동파의 진적이 국내에 유입된 경로에 학계 및 일반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백수산불적사유기는 소동파가 북송 철종 소성(紹聖) 2년(1095, 고려 헌종1) 3월에 현재 광둥성(廣東省) 후이저우시(惠州市)에 위치한 백수산(白水山) 불적사(佛跡寺)를 유람하면서 남긴 글이다.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은 1950년대 후반 친족관계에 있던 파평 윤씨(坡平 尹氏)의 종손이 미국으로 이민 갈 때 이 작품을 구입했다. 이 작품의 전승관계는 원나라 인종이 충숙왕에게 하사한 남송의 비각(秘閣) 문서 가운데 하나로, 이언충(李彦忠)이 공신에 책봉될 때 충숙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 이언충의 아들 이광기(李光起) 때 윤원무(尹元茂)로 넘겨졌다. 이후 임진왜란 때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윤탁(尹鐸)의 종손으로 전승이 이어졌다. 소동파의 진적은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보물이었기 때문에 왕실과 권력자 모두가 탐내는 작품이었다. 파평윤씨(坡平尹氏)는 고려초 공신집안으로 조선 때까지 최고의 가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은밀하게 소장[秘藏]’이 가능했다.
송나라에서 ‘보물’인 소동파의 진적이 고려로 온 이유는 고려의 충선왕이 원의 황제계승에 관여하여 인종(仁宗)을 등극시켰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인종이 멸망한 남송 황실 도서관인 비각(祕閣)의 도서를 충선왕의 아들인 충숙왕에게 하사했기 때문이다. 고려사(高麗史) 권34 충숙왕 원년(1314) 7월 갑인일 기사에 원 황제[仁宗]이 충숙왕에게 남송의 왕실도서관에 소장된 서적 4,371책 17,000권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그 직후 충선왕을 보좌한 공로로 ‘공신(功臣)’이 된 이언충은 원에서 하사받은 비각의 문서인 동파서를 수여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언충은 7년 후인 충숙왕 8년(1321) 10월에 원에 하정사(賀正使)로 파견되었고, 이 때 동파서에 원말4대가인 황공망(黃公望, 1269∼1354)과 조맹부의 아들 조옹(趙雍, 1289∼1369) 등의 발문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검여는 환갑을 맞은 1971년 본인의 제명과 이가원의 발문을 더해 동파서를 재표구했다. 1975년 한국을 찾은 요몽곡(姚夢谷, 1912∼1993)의 감정을 받았고, 1976년 5월 동파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다. 송나라 제일의 서예가이자 문장가인 소동파는 영향을 받지 않은 후대 문인이 없을 정도로 서권기(書卷氣)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의 최고작들을 남겼으며, 좌담(座談)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서정적인 당시(唐詩)를 밟고 철학적 요소가 짙은 시경(詩境)을 개척하였고, 도가적 예술혼을 불후의 명작 〈적벽부(赤壁賦)〉와 <백수산불적사유기> 등에 새겨놓음으로써 우리 시대 예술가가 지녀야할 즐기며 취하는 예술의 가치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전시관람 문의 및 예약 ☎760-1216, 1322, 주말, 공휴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