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문화와 미래 도시 생태계
- 스마트그린시티랩
- 조회수383
- 2020-12-29
메이커 문화와 미래 도시 생태계
-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 생태계 엔진으로써의 메이커 스페이스와 메이커 문화 -
도시는 인류 역사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역사 이래로 우리는 어느 시대이건 항상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또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당시의 첨단 기술을 활용해왔다. 이러한 과정의 축적이 오늘날의 도시이자 도시인의 삶이라 볼 수 있다. 도시는 바로 우리가 함께 살며 일하고 즐겨온 터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시 발전 과정의 축적이 결국 인류의 역사이다. 도시의 발전은 기성세대의 올바른 시대적 가치 설정, 미래세대의 발전적 계승과 지속적인 진화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세대 공동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선순환을 지속해온 도시들이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2000년 전, 서양문명의 발원지인 아테네 사람들이, 500년 전 르네상스를 일으킨 피렌체 사람들이, 지금 아테네와 피렌체가 유적 관광지가 된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300년 전 사람들이, 현재의 뉴욕이나 실리콘밸리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또 300년 후에도 여전히 세계가 동경하는 도시일까?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700년 가까이 한반도의 수도였지만 일본 식민지와 한국전쟁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로 전락했던 서울은, 오늘날 세계 5위의 경제권 규모를 가지고 있다. 서울은 어떻게 이를 이루어낼 수 있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그 답은 도시에 있다.
미래 시대는 도시의 시대이다. 이미 UN은 2030년까지 15억의 도시인구 증가와 도시 수의 증가 그리고 거대 도시권(Megacity Region)들이 늘어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는 오늘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도시가 늘어난다면 인류의 최대 위협요인은 다름 아닌 도시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또 한편으로 도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주체이자, 창조적 혁신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 역시 바로 도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도시는 생산기능을 도시 외곽 또는 도시 외부로 이전시켜, 제조업 기능을 약화해왔다. 이미 뉴욕과 런던, 파리 등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제조업 비율은 5%를 넘지 않으며, 서울 역시 제조업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 결과 생산기능이 집약되어 있던 전통적인 도시 공간은 소비와 서비스의 공간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도시의 제조업은 전통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길러내 왔던 도시의 엔진이었고 첨단 기술과 산업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도시 제조업의 감소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로 몰려든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고, 삶과 일과 놀이와 여가가 어우러진 도시의 산업 생태계는 생산기능의 축소로 힘을 잃었다. 오늘날 청년의 일자리 문제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생활 중심지가 되는 도시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건전한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지 못한 원인이 크다. UN에 의하면 2017년 전 세계 청년 실업률은 13.2%에 이르며, 이 수치는 2011년 12.8%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을 하는 청년들의 1/3 이상은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도시의 혁신과 혁신지구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도시는 민간 및 공공 부문에서 진행되는 학술 및 과학 연구의 새로운 개발을 상업화하는 글로벌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자본과 재능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디지털 기술의 혁신적 발달과 함께 첨단 제조업으로 대표되는 도시 생산기능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면서 지역적 지식 기반을 국제적인 지식 기반의 산업 생태계와 연결시키고, 또한 적극적인 지식 교환을 통해 새로운 혁신지구의 개념과 실현을 선점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도시 내 창조산업과 첨단 제조업이 도시 경쟁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중심에 창조 인력으로 기업가 정신과 열정을 가진 청년 창업가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창조산업과 첨단 제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의 잠재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 한국 청년 인구 중 99.6%, 즉, 거의 전부가 1980~2000년대에 태어나 컴퓨터와 인터넷 환경이 익숙한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산업과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 청년들의 창업 활동은 OECD 30개 국가 중 18위로서, 평균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더욱 큰 문제는 기성세대가 청년의 창업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요소에 대해 생각해오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창업가 정신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에 대해서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산업 생태계를 계획적으로 조성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서울의 상암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의 경우, 미디어 산업의 전 과정에서 창업가부터 중소기업 그리고 대기업이 어우러져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치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 최대의 미디어 집적지로서 900개 기업, 5만 명의 창조근로자, 연 매출 20조 원 (2016년 기준)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 상암 DMC에서조차도 창업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애플, 휴렛팩커드, 구글과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차고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우리는 차고를 대신하는 더 나은 공간만 제공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의 진짜 ‘차고’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창업의 요람으로서 차고란, 스스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도구가 가득한 메이커 스페이스이자, 어느 때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작업실이며,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안정적인 주거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차고 문을 나서면 여가 및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24시간 도시 서비스가 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의 자유로운 교류와 우연한 협력이 가능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 및 상품화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양질의 도시환경과 사회시스템이 있다. 즉, 제대로 된 기업을 갖기 전까지 최소한의 비용과 공간으로 거주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고 다른 이들과 교류, 협력할 수 있는 창업 전 과정의 생태계가 있는 창조적 요람인 셈이다. 이런 환경 안에서, 진짜 ‘차고’ 문화는 청년 창업가들이 가진 에너지와 만나 창조적 혁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뉴욕 로어맨해튼과 미트패킹 팩토리, 보스턴의 이노베이션 디스트릭트 그리고 런던의 텍시티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이 모여 첨단 제조업이 일어나고 새로운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차고 창업문화의 성공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개발도상국 청년들의 창업 활성화에 참고가 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인 미래 모델로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차고가 상징하는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 창업을 지원하는 공간과 프로그램, 그리고 싸고 작지만 거주 안정성이 높은 주거와 다양한 도시 서비스가 지원되는 환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의와 함께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메이커 스페이스는 도시의 생산기능 회복과 디지털시대의 첨단 제조업을 위해 창업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핵심 인프라로서, 메탈3D프린터, 첨단 디지털 기기와 같은 실험・생산 장비를 구비해 기술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시제품을 생산해볼 수 있는 공공의 공작소라고 할 수 있다. 즉, 디지털 기반의 제조업 창업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이자, 개인이 갖추기 어려운 값비싼 장비를 공익적 목적으로 저렴하게 제공함으로써 우연한 협력과 지식의 교류를 유발하는 캠퍼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수요가 집중되고 이용률이 높은 도시 중심 지역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설치하여 취미용 제작부터 아이디어 검증·사업화·양산 지원까지 시제품 제작 기능의 전 과정을 갖추도록 하고, 모든 장비·모든 세대에 대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다차원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더 많은 창업과 도전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와 문화를 형성하게 해준다.
도시 생태계의 회복은, 청년 창업가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열심히 일하며 즐겁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이들의 메이커 활동이 창업과 성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산 환경이 갖추어지고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현대도시는 과거 전통도시들이 그랬던 것처럼, 청년 창업가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살아 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이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Test-bed), 그리고 체험 가능한 시장과 쇼케이스(show case)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는 기후변화와 급속한 도시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다음 세대에게 건강한 삶의 환경을 남겨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이 시대가 지향하는 환경·사회·경제 발전의 목표를 조화롭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기존 산업의 고도화와 신산업의 융합을 촉진하고 도시환경과 산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거점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하는 것은 새로운 산업과 창조 인력을 유입하여 도시의 일자리와 활력을 되찾고, 도시 생산 문화를 지속적으로 확산하며,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고 도시재생과 스마트시티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산업과 첨단 제조업 시장에서 이미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기술・ 산업적 역량과 잠재력, 그리고 우수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국가 경쟁력 확보를 넘어 지구촌과 인류의 미래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는 메이커 문화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장소와 자원, 그리고 그 가치를 인식하는 우리 모두의 공감대 형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글 / 성균관대학교 김도년 교수